역사의 거울을 가장 소중히 여겼던 이는 당태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을 역사상 세계 최대의 문화강국으로 이끌어 올렸다는 당태종은 늘 3가지의 거울을 애용했다. 첫째의 거울은 동경(銅鏡)이요, 둘째의 거울은 사경(史鏡:古鏡)이요, 셋째의 거울은 인경(人鏡)이다. 역사의 거울이란 사경을 말하는 것이다. 동경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울이다. 거울 앞에 서야만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단정하게 다듬어갈 수 있다. 이는 곧 현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역사의 거울이란 형상 이면에 내재하는 우리 모두의 간접경험을 비추어주는 거울을 말한다. 역사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다만 미래가 포함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미래를 소유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미래는 다만 가능성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간접경험은 그 같은 미래를 조소(彫塑)해주는 일차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미래의 전징(前徵)임에 틀림이 없다. 끝으로 인경(人鏡)이란 표준인간상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인식하고 다룰 때 표준(스탠더드)을 설정한다면 성취가능성도 높여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량을 목표 지향적으로 통합시켜갈 수 있는 기대효과도 지닐 수 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성인군자 이야기가 살아질 수 없고 모범적 인간상의 추구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인경(人鏡)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태종은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역사편술에 앞장서서 지난날의 간접경험을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 있게 음미하고 체득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치도(治道)를 어떻게 열어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지난 왕조사가 보여주는 흥망의 원인을 잘 통관하고 있었기에 당나라의 위상을 그토록 높여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온갖 정보자료 활용 면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 따라서 당태종이 소중히 여기던 3가지 거울을 더욱 소상하고 밝게 비추어볼 수 있는 가능성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높다. 발길 닿는 곳마다 거울을 볼 수 있는가 하면 거의 모든 역사기록을 전산화해놨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흥망사를 언제나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대 인물상을 비롯하여 실존하는 인물정보도 언제나 입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역사이해에 대한 수준이 낮고 인물 기용 면에서 객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면 그 까닭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만약의 경우 우리가 활용 가능한 정보자료를 방기하고 있다는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사맹(史盲)이며 인맹(人盲)이라는 지적으로부터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남보다 깊고도 큰 역사의 거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3한, 3국, 후삼국이라는 역사발전의 길을 거쳐 왔다는 것은 분열과 통합이라는 극난(克難)의 경험을 많이 체험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풀어가는 현장에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인경(人鏡)이다. 요즈음 인기가 높은 TV 연속극으로 방영 중인 성웅 이순신 은 역사의 거울과 사람거울이 무엇인가를 깨우쳐주는 좋은 본보기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역사현장은 시련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시련극복의 보다 큰 가능성은 역사의 거울에서 찾아보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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